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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아리랑학교, 헐버트아리랑악보비답사(주)국악신문사 주최주관으로 '국악진흥법 이해를 위한 2024아리랑학교'가 14일부터 15일까지 2일간 개최되었다. 5개 지역 전승단체 경산아리랑보존회(배경숙, 홍희연 이경숙 배혜숙 송경애), 구미의병아리랑보존회(임규익 배부근 임규익 홍순익 김영준 정종철), 안성아리랑보존회(조명숙,서명주, 양미자, 박경순, 박정미, 은희숙, 고경숙, 이정레, 이진영, 이미숙, 김순덕, 방미화, 김복식,), 왕십리아리랑보존회(이혜솔, 김화숙, 문강자, 정점순, 김용희), 동두천아리랑보존회(유은서, 김종철,원금순,노진옥,박경숙)와 아리랑연합회 김연갑 이사장, 아리랑학회 기미양 연구이사가 함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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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랑학교, 조명숙 경서남도잡가보유자 노익장 과시(주)국악신문사 주최주관으로 '국악진흥법 이해를 위한 아리랑학교'가 14일부터 15일까지 2일간 개최되었다. 안성향토무형문화재 제4호 '안성경서남도잡가' 예능보유자 조명숙 명창이 문경 나드리를 했다. 1945년생 80세로 13일 저녁 문경시 '숲속의 맑은 향기 팬션'에서 개최한 ‘24춘계아리랑문화학교’에 참석 1박 2일 행사에서 노익장을 과시했다. 행사는 아리랑학회 기미양 연구이사의 진행으로 5개 지역 아리랑보존회와 아리랑학회 40여 명과 함께 각 단체 현안 검토, 김연갑 교장 특강, 지역 아리랑 교차 감상회, 문경새재 H B 헐버트아리랑비 답사 일정을 소화했다. 5개 지역 단체는 경산아리랑보존회(회장 배경숙), 구미의병아리랑보존회(회장 임규익), 안성아리랑보존회(조명숙), 왕십리아리랑보존회(이혜솔), 동두천아리랑보존회(유은서)이다. 조명창은 지역 아리랑 교류를 위한 안성아리랑 공연에서 손수 쇠를 치며 신명을 높여 다른 지역 아리랑 회원들의 박수와 앵콜를 받았다. 조명숙 명창은 1018년 11일 안성시로부터 향토무형문화재 제4호 ‘안성경서남잡가’라는 종목으로 보유자 인정을 받았다. 경기, 서도, 남도소리를 모두 아우르는 능력을 인정한 것으로 어릴 적부터 안성지역 권번의 문화를 체득한 결과이다. 이 때문에 안성지역의 권번, 교방문화에 대한 소중한 증언자로서도 유명하다. 특희 헐버트 채보 아리랑과 1910년대 총독부 조사자료에 나오는 ‘안성지역 채록’ 아리랑을 구연하여 아리랑 연구자들의 관심을 받기도 하였다.(2000, 기미양, ‘안성아리랑 연구’) 참가회원들과 행사 마지막인 헐버트아리랑 답사 현장에서 다음 행사 때도 건강한 모습으로 만날 것을 악속하고 기념사진을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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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시, 의병장 왕산 허위 선생 역사·문화적 가치 재조명경북 구미시가 구한말 구미 출신 의병장 왕산 허위 선생의 업적을 기리고역사·문화적 가치를 재조명하는 작업에 나선다.3일 구미시에 따르면 왕산 허위(1855~1908) 선생은 임은동 출생으로 막대한 집안 재산을 처분하여 13도 창의군 군사장으로 활약했으며, 1908년 10월 서대문형무소에서 1호 사형수로 54세 순국했다.선생의 가문은 우당 이회영 선생 가문, 석주 이상룡 선생 가문과 함께 3대에 걸쳐 독립운동에 헌신한 3대 독립운동 명문가다.허위의 집안은 대대로 유학을 숭상한 영남 지역 이름 높은 학자 집안으로 허위는 구한말 정미의병 당시 서울진공작전을 주도한 의병대장이다. 왕산 옥사 후 허씨 일족들은 고향에서 일본의 억압에 견디지 못해 1915년 만주로 온 일족이 망명길에 올라 허위의 여러 형제 허겸.허형.허필과 그 아들들은 해외로 일가를 모두 이끌고 이주하여 뿔뿔이 항일 운동을 계속하였다. 허위 선생을 비롯해 총 9명이 독립운동 서훈(건국훈장, 애국장)을 받았다. 서울 종로구에 서울 진공작전을 기억하는 왕산로가 행정지명으로 불리우고 있다.구미시는 올해 왕산가(家) 다큐멘터리를 제작할 계획이다. 또 추모 공간인 경인사 사당 누각을 건립하는 등 허위 선생의 업적을 널리 알리고 독립운동 명문가에 대한 사회적 공감과 보훈 문화조성에 힘쓸 예정이다. 시는 왕산기념관 옆 사당(경인사)에 내년 말까지 누각을 짓기로 했다. 시민이 참배할 수 있도록 주변 경관 및 사당과 어울리면서도 편리성을 갖춘 전통양식으로 건립한다.왕산 허위 선생 외에도 왕산가 후손들의 독립운동을 기리고 구미 독립열사를 추모하고자 왕산기념관 주변에 오태공원 조성사업도 추진하고 있다.오태공원은 임은동에 위치하며, 공원 내 왕산허위선생 집안 14인의 독립운동가 조형물을 설치한다.왕산의 정원, 기념 광장, 추모의 정원, 열사의 길 등을 조성한다.오태공원이 조성되면 많은 시민들이 독립열사들의 발자취와 숨결을 느끼고 애국의 의미에 대해 깊이 돌이켜 볼 수 있는 호국보훈의 새로운 요람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김장호 구미시장은 "왕산 허위 선생의 위대한 업적을 널리 알리며 그 가치를 계승, 발전시켜 나갈 수 있도록 다양한 선양사업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2005년 왕산 허위장군의 의병정신을 기리는 '구미의병아리랑'을 작창한 경산아리랑보존회(회장 배경숙)는 "허위 의병장은 악극 의병아리랑 컨텐츠로 확산시키는 작업을 하고 있다."며 시의 관심에 큰 기대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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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회 '아리랑 그리고 영남의 소리', 9일 개최영남민요연구회가 주최주관하는 제19회 '아리랑 그리고 영남의 소리'가 9일 청송군 현서면 하당마을 귀운당에서 열린다. 내년이면 20주년를 맞이하는 '아리랑, 영남의 소리'를 재조명하기 위해 '사진작가와 함께하는 영남아리랑과 민요'이다. 이 행사는 전승활동 20주년을 준비하며 ‘아리랑, 그 넘어’를 준비한 것이 사진과 함께하는 행사이다. 이 시대 모든 활동은 사진 기록에 존재한다. 이 시대적 현상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는 취지는 시의적절하며. 아리랑 공연의 사진 작품화는 기대를 갖게 한다. 홍 순익 사진작가는 "영남민요연구회가 펼치는 영남민요나물노래, 방아타령, 지점소리, 어부사, 실제 상여와 상여소리 등 잊혀져가는 과거 토속민요를와 함께 재현되는 옛사람들의 때몯은 호미, 지게, 상여놀이 무대는 정겹고 특별하다. 다른 무대에서는 볼 수 없는 전통의 무게를 생생하게 재현한다. 이런 계기로 이 사진전을 갖게 되었다"라고 전했다. 공연은 대구의 주산 팔공산을 노래하는 '팔공산아리랑', 왕산 허위 의병장의 의병정신을 기리는 구미의병아리랑, 영남의 전래민요,방아타령 맷돌질소리, 화전놀이, 상여소리 등이 퍼포먼스와 같이 펼쳐진다. 영남민요연구회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아리랑’과 ‘국가무형문화재 129호 아리랑’ 등재는 물론 영남지역 민요의 현재적 가치 현시(顯示)에 기여하는 우리나라 아리랑 전승단체의 상징이다. 이를 이끌어 온 배경숙 회장은 아리랑 전승자이며 연구자이다. 학계에서 '아리랑 그리고 영남의 소리' 개최를 이끌어 온 영남민요연구회 19년 활동 역시, 아리랑 역사의 분명한 위치를 갖고 있다는 평이다. 다음은 대구시민이 사랑하는 대구의 주산 팔공산을 아리랑에 실어 노래한 '팔공산아리랑'사설이다. 배경숙 작사 작창이다. 아리아리랑 쓰리쓰리랑 아라리요 팔공산아리랑을 불러나보세(후렴) 1. 달도 밝아 휘영청 팔공산 우뚝하구나 대구의 명산이요 한국의 명물이라 2. 우짤라요 우짤라요 이정을 우짤라요 정주고 가신님 이내속은 우짤라요 3. 금호강 잠긴달은 잡힐 듯 말듯하고 동화사 세종소리 끊길 듯 말듯하네 4. 대구야 팔공산 얼마나 좋아서 아리랑 타령에 얹어서 노누나 5. 골이 깊어 쉬어가나 수태골 저 구름아 날 두고 가신님 못잊어서 머무느냐 6. 오면오고 가면갔지 우짜라꼬 이라능교 당신 성화 못 견디어 내사마 못살겠네 배경숙 회장은 "아리랑 전승과 영남 지역 전래민요의 무대화를 목적으로, 시민들에게 좀 더 가까이 가기 위해, 영남지역 토속민요와 함께 옛날 향수를 느낄 수 있는 디딜방아, 절구방아, 삼삼는 모습, 그리고 다듬이질, 물레질, 힘들었던 시절 유일한 아낙의 쉼터인 화전놀이, 동네의 슬픔을 함께하는 상여꾼들, 땅다지는 지점소리, 나물노래, 어부의 그믈질 모습 등을 사진으로 남기고, 널리 알리고자 특별 기획을 하였다"라고 밝혔다. 내년은 '아리랑 그리고 영남의 소리' 제20회를 맞는다. 청년의 탄생, 새로운 변신을 기대하며, 특히 대구의 근대인물 이재욱을 팔공산아리랑에 담아 세상에 드러낸 배경숙 회장의 전승활동에도 새로운 전기를 맞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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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소리극 ‘구국의병장 허위’에서 의병정신 기린다."피고, 허위! 죄인이 감히, 대일본제국에게 저지른 불경한 죄를 하나도 빠짐없이 알려주겠다. 1896년 의병을 모아 대일본제국을 공격해 막대한 피해를 입혔다. 1907년부터 ‘연합의병창의군’이라는 불순단체를 결성해 대일본제국에 총과 칼을 겨누어 많은 죄를 저지른 대역죄인이다 피고, 의병을 일으키게 한 것은 누구이며 대장은 누구입니까?"(일본 재판관) "의병이 일어나게 한 것은 이토 히로부미이며, 대장은 바로 나다. 이토가 우리나라를 뒤집어 놓지 않았다면, 의병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죽더라도 우리 민족의 독립을 위한 싸움은 계속 될 것이다."(왕산 허위) 대일항쟁기 구미에서 출생한 독립운동가 왕산 허위 의병장의 뜨거운 의병운동이 소리극으로 부활된다. 그가 돌아와서 의병들과 함께 '의병아리랑'을 함께 부르며 서울로 진격한다. 진격!! 1일 구미의병아리랑보존회(회장 임규익) 주최 주관으로 개최되는 제15회 구미의병아리랑제가 구미문화예술회관에서 오후 2시에 개최된다. 배경숙 예술감독의 연출로 소리극 ‘구국의병장 허위’가 무대에 오른다. 1부에서는 '저항의 노래', 2부에서는 '승리의 노래'로 구성되어, 의병정신이 발현되는 과정과 영남인의 심성이 담긴 영남전래민요집에서 채록된 영남의 민요와 아리랑이 극의 단막과 어울어져 허위장군의 붉은 애국심을 펼친다. 구한말 대법원장을 지내고 전국 의병을 총지휘하여 서울 진격작전을 지휘했던 13도 창의군 대장 허위는 서대문형무소 첫 번째 사형수로 1908년 10월 21일 정오, 경성감옥의 교수대에서 최후를 맞이했다. 당시 왕산의 나이 54세였다. 교수대에서 일본 헌병사령관도 그의 당당한 기개에 고개를 숙였다고 알려졌다. 소리극에서 허위 장군의 13년 의병투쟁을 구미의병아리랑에 담아서 허위장군의 의병정신을 기린다. 왕산의병아리랑 아리랑 아리랑 아리리요 아리랑 어얼싸 아라리야(후렴) 1. 여봐라 우리네 대장군나셨다 13도 창의대진 군사장이시다 2. 노래하라 외쳐라 우리네 의병장 기린다 우리는 왕산허위대장군 3. 나시니 구미땅 임은동이요 서시니 경술년 30조 호령이다 4. 오얏꽃 날리는 3월이 오면 밤새도록 노래하라 그립다하여라 5. 역사는 기린다 왕산허위장군 산하가 외친다 너는 아냐고 6. 13도 넘어서 이역 만주 땅까지 창의하여 거병하니 세상이 들썩 극중 등장인물은 허위, 허훈, 허경, 이기찬, 아카시(일본 헌병사령관) 5인과 보존회 30여 명이 민중들로 나와서 구미의병아리랑, 구미아리랑, 영남민요 10여 곡을 소리극으로 올린다. 한편 올해 왕산 허위 선생 115주년 추모제를 기념하기 위해 지난 15일 광복절에는 구미의병아리랑보존회가 서울 왕산로, 남인사마당, 광화문, 안중근의사기념관을 차례로 순회하면서 '아리랑버스킹' 공연에서 왕산허위 장군을 기리는 '왕산의병아리랑'을 널리 알렸다. 임규익 회장은 내년에도 왕산로와 광화문 광장에서 왕산의병아리랑을 알리겠다고 전했다. 특히 사할린 동포 인무학 교수(모스크바 대학)에 의하면 "왕산 허위 손자 허진 선생은 카자흐스탄 알마티 고려극장에서 극작가로 일하면서, 허위 장군의 의병활동을 고려인들에게도 널리 알렸다. 당시 많은 의병들이 서울 진격 작전을 실패하고 독립운동을 위해 연해주로 이주했다."라고 전한다. 당시 유관순 의사, 안중근 의사, 윤봉길 의사 등은 널리 알려져 있지만 허위 의병장은 구미에서만 부각되고 있는 실정이다. 당시 많은 독립운동가와 자손들이 국외로 이주하여서, 의병활동 중에 이름도 없이 산화한 의병들의 존재 기록이 아직도 파악이 안되고 있다. 의병운동의 자취를 발굴하고 복원시키는 작업이 시급하다고 본다. 구미아리랑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가 났네/아리랑 얼씨구 노다가세 노다가(후렴) 금오산 참꽃은 다시 또 피련마는/나를 버리고 가신님은 언제나 오려나 왕산의 충절과 용맹의 기상은/내 고향 구미의 자랑이라 2005년 배경숙의 '구미아리랑' 발표 후 창립한 구미의병아리랑보존회는 2009년부터 경상북도과 구미시 후원으로 매년 구미아리랑제 개최, 2018년 이후는 허위의병장을 기리는 구미미의병아리랑제를 개최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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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된 날, '사할린, 기록되지 않은 역사'전을 보다광복절날 오후 4시 대일항쟁기 강제징용을 당하여 사할린 섬으로 끌려가서 돌아오지 못한 동포들의 생활상을 기록한 '사할린, 기록되지 않은 역사'전이 열리는 인사동 갤러리 인덱스를 찾아갔다. 일본은 태평양전쟁을 위해 1938년부터 1945년 해방이 될 때까지 약 6만 명의 한인들을 사할린으로 강제동원으로 보내 탄광촌과 벌목장에서 강제노역시켰다. 일본이 패망한 후에도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러시아의 강제노역에 시달렸으니, 얼마나 원통하겠는가? "고향이 그리워, 두고 온 자식이 보고 싶어 밤마다 저 언덕에 올라 바다를 향해 아무개야~ 아무개야~ 하고 통곡을 하니 그 소리가 밤바람을 타고 온 동네에 퍼져 이불 안에서 다들 울었다우.” 라고 증언한 코르사코프 바자르 할머니의 증언이 떠올라서 가슴이 미어졌다. 이젠 대부분 강제동원을 당한 사할린 동포 1세가 세상을 떠나, 많은 역사적 사실이 묻혀가는 안타까운 실정에 있다. 뒤늦게 알려진 사할린 한인 학살사건도 역시 그 실체조차 제대로 기록되지 못하지 않았던가? 전시를 보기 위해 힘겹게 전시장을 올라가니, 이미 ‘작가와의 만남’은 진행되고 있었다. 막 들어서니 사할린동포후원회장인 (주)국악신문 기미양 대표가 축사를 하고, 경상도에서 온 지역 소리꾼이 부를 사할린아리랑을 소개하고 있었다. 사할린으로 끌려간 한인 중 68퍼센트가 경상도 사람이라서 구미와 대구에서 참석했다는 것이다. 경산아리랑보존회 배경숙 회장과 홍희연, 구미의병아리랑보존회 임규익 회장과 배부근이었다. 사할린아리랑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고개를 넘어간다(후렴) "내가 여기 왜 왔나. 왜 왔나 우리 님 따라서 내 여기 왔지 사할린이 좋다고 내 여기 왔나. 일본놈들 무서워 따라왔지 따뜻한 조선을 놔두고, 사할린에는 왜 왔나, 왜 왔던가 우리집 영감님은 왜 가셨나 나만 혼자두고 어데를 가셨나” 전시장에는 소련 시절부터 한민족 풍습을 지켜 온 사할린 동포들의 생활상과 영주귀국 모습 등 여러 가지 사진이 전시되어 있었다. 이예식 기자를 비롯하여 전시를 준비한 ‘Kin지구촌동포연대’ 최상구 대표와 사진가 김지연씨, 김상열 ‘한국이민사박물관’장, 김연갑 ‘아리랑연합회 이사장, ‘사할린동포후원회장'인 기미양 (주) 국악신문 대표이사, 경산아리랑보존회 배경숙 회장과 홍희연, 구미의병아리랑보존회 임규익 회장과 배부근, 새롬출판 송남숙 대표가 자리를 채워주었다. 특히나 인천, 서천, 안산, 파주에 영주귀국한 사할린동포들이 함께 해주었다. 이규상 ‘눈빛출판사’대표, 사진가 김문호, 안해룡, 정영신, 곽명우씨 등 70여 명이 전시장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전시작가 이예식씨는 1949년 사할린 마카롭시에서 출생하여, 1998년부터 지금까지 ‘새고려신문’ 사진 기자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사할린1세였던 부친의 애환을 바라보며 성장한 2세로서 꾸준히 사할린동포들의 삶을 기록하고 있다. 이예식 작가는 인사말에서 "두 시간이면 오는 거리를 먼 길로 우회하여 왔다”는 말로 한국과 러시아 교류의 어려운 현실을 표현했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사진작가 김지연씨는 "시대를 증언하는 이미지는 시간과 장소를 초월하여 우리에게 말을 걸고 있다." 며 "광복절을 맞았지반 사할린 동포는 진정 해방이 되었는지 묻기 위해 이번 전시를 기획했다"고 말했다. 사할린의 그 날을 기억하는 전시는 오는 21일까지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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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절 맞이 광화문, 남인사, 왕산로에서 '아리랑버스킹'광복절을 맞이하여 (사)왕십리아리랑보존회(회장 이혜솔), 경산아리랑보존회(회장 배경숙), 구미의병아리랑보존회(회장 임규익), 봄내아리랑보존회(회장 오현승) 4지역 아리랑전승단체가 광화문, 남인사마당, 왕산로, 안중근의사기념관 등지에서 '아리랑버스킹'공연을 개최했다. 특히 광화문, 인사동 곳곳에서 한국을 찾은 2023잼보리 단원들과 함께 기념사진도 찍고 아리랑을 알렸다. 아리랑버스킹에 참가한 4개 지역 단체 회원들은 안중근의사기념관과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 답사를 하고 시민들과 동포들을 만나서 기념사진을 찍고 광복절의 역사적 의미를 다시 한번 새롭게 가슴에 새기는 계기가 되었다고 전했다. 내년에도 광복절에 광화문에서 함께하겠다고 손을 굳게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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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할린 이예식 기자 ‘기록되지 않은 역사’ 사진전광복절을 맞아하여 15일 오후 4시 사할린 새고려신문 사진기자 이예식 선생의 사진 전시회, ‘사할린, 기록되지 않은 역사’ 전시회 오픈식 겸 간담회가 개최되었다. 전시장에는 작가의 작품 30여 점이 전시되었고, 국내 사진작가, 사진전문 눈빛출판사, 전국사할린귀국동포연합회 권경석 회장, 파주사할린영주귀국동포회, 인천사할린영주귀국동포회, 서천사할린영주귀국동포회, 경산아리랑보존회, 구미의병아리랑보존회, 새롬출판사 송남숙 사장, 전 사할린한국교육원 이병일 원장, 사할린국립종합대학 엘비라 임 교수, 사할린 유학생들.(주)국악신문 등 100여 명이 자리를 함께 했다. 전시장 인덱스 김지연 대표의 진행으로 축사, 환영사, 작가 인사가 이어졌다. 사할린 1세 이예식 작가는 인사말에서 "2시간 이면 오는 거리를 먼 길을 우회하여 왔다”는 짧은 인사로 한러교류의 어려운 사정을 표현했다. 지구촌동포연대 최상구 대표는 축사에서 매년 음력 달력을 가지고 사할린을 방문했었는데, 코로나로 3년간 가지 못했다. 그래서 이번 전시회는 너무 반갑고 뜻깊다."고 전했다. 특별 출연으로 구미의병아리랑보존회(회장 임규익)가 ‘사할린아리랑’을 불러 장내를 숙연하게 했다. 내가 여기 왜왔나 왜왔나 우리님 따라서 내 여기 왔지 사할린이 좋다고 내여기 왔나 일본놈들 무숩어 따라왔지 따뜻한 조선을 놔두고 사할린에는 왜왔나 왜왔던가 원로 사진작가 조문호 선생은 "우리 사진계에 진객”이라고 이예식 선생을 환영했다. (주)국악신문 기미양 대표는 "이예식 선생은 사진을 통해 사할린 수난사를 대변하는 거의 유일한 기록자”라고 하며 "이번 사진전이 국내에 사할린의 역사를 재인식하게 하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고 하였다. 이번 전시는 지난 12일부터 21일까지 서울 종로구 갤러리 인텍스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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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일 ‘의병의 날’, “反義兵을 아십니까?”6월 1일은 ‘의병의 날’이다. 의병의 희생정신을 기리고 의병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제정한 법정기념일로 2010년 행정안전부가 제정하였다. 의병(義兵)이란 국가가 외침을 받아 위급할 때 국민이 자발적으로 조직하는 자위군으로 국가의 명령이나 징발을 기다리지 않고 자원 종군하는 민군(民軍)이다. 의병의 창의는 향토와 동족의 방어를 위한 것이며, 나아가 일본의 야만성에 대한 민족 감정의 발로였다. 결국 일본으로부터 침략을 받자 민족적 저항운동으로 일어난 것이 의병의 창의다. 그래서 승패를 가리지 않고 죽음을 결심하고 과감히 전투하는 것을 본분이라 여겼다. 박은식(朴殷植)은 "의병은 우리 민족의 국수(國粹)요 국성(國性)이다. 나라는 멸할 수 있어도 의병은 멸할 수 없다.”고 하였다. 우리 역사에서 뚜렷한 성과를 거둔 의병전투는 한말 의병으로, 1895∼1896년의 제1차 의병전쟁(을미의병)과 1905∼1910년의 제2차 의병전쟁(을사의병과 丁정미의병)이다. 이 중 제2차 의병전은 다시 의사의병과 정미의병으로 나누는데, 정미의병은 역사상 마지막 의병전쟁이란 점과 강원도 춘천의병이 중심이란 점에서 주목하게 된다. 실제로 의병운동이 가장 치열하던 시기인 1908년을 예로 들면, 강원의병은 전국 13도 의병 중 참여 의병수·순국자·빼앗긴 총수·일본군 사상자 수 등 의병활동과 관련된 몇 가지 중요 지표에서 전국 순위를 기록했다.(대동공보, 1909년 3월 14일) 춘천 정미의병은 1907년 7월 태동하여 확산되고, 1908년 들어 가장 강력했고, 1909년 들어 퇴조했다. 이 춘천 정미의병에 대해서 일제는 이런 대응을 한 것으로 확인된다. "1907년 6월경 강원도관찰부를 방비하고 춘천의병의 재봉기를 막고자 춘천에 경무고문부 춘천지점을 설치하여 경시(警視-경찰서장급)1명, 경부(警部)5명, 고문의(顧問醫)5명, 순사 101명을 배치하였다.”(만세보, ‘경무고문부 춘천지점’, 1907년 6월 12일) 고종퇴위ㆍ정미조약ㆍ군대해산과 같은 일제침략에 반발한 춘천민의 항일의식의 폭발과 국권수호를 위해 분투중인 고종세력의 의병추동 활동이었다. 1907년 8-9월 두 달간 지속된 춘천 정미의병의 확산기에는 유생 신분으로 농사를 업으로 삼던 인찬옥은 1907년 7월 서울에서 내려온 고종세력의 수하 김제현의 창의활동에 고무되어 창의의 깃발을 들었다. 그는 춘천 사내면에서 창의하여 소모활동을 펼치다가 7월 말경 춘천경무고문 지부에 포착되어 황기운(黃奇雲)·한병이(韓炳伊)와 함께 춘천군 경무서에 수감되었다. 인찬옥의 수감 이후 보름 정도 지난 8월 중순경부터 춘천 각지에서 의병운동이 본격화되었다.(1908년 8월 1일, 황성신문) 1907년 9월 한 달간 춘천의병은 춘천읍을 에워싸고 일본군과 전투를 벌이면서 강원도관찰부로의 진격을 시도했다. 특히 의병들이 춘천읍내로의 진격을 성언한 것은 9월 20일 전후였다. 그 당시 화천에 집결한 의병들이 홍천군에서 일본군과 접전을 벌인 후 일부는 화천으로 퇴각하고 일부는 타처에 집결하였는데, 이들은 춘천을 포위 습격한다고 선언하였다. 또한 강원도 각처에서 봉기한 의병들이 점차 춘천으로 모여들어 춘천을 포위하려는 형국을 이루자 춘천수비대가 이를 진압하기 위해 출동하였다. 나아가 정미 춘천의병 중 2-300백 명의 포군을 포함하여 군사수가 700명에 달할 정도로 대규모 부대를 이룬 의병진도 춘천읍을 습격한다는 것을 선언하고 있었다. 이 의진은 모두 상하의 흑색의 복장을 갖춰 입고 배낭을 메고 일본군을 만나면 교전하지 않고 의병을 규합할 뿐이며, 척후를 사방에 보내 일본군의 기습을 방비하고, 행진 때나 유진 때에 군율이 엄격하였다. 이를 보면 이 의진은 춘천 정미의병진 중에서 군사수나 규율과 훈련이 가장 엄하고 장비가 가장 우수했던 부대로 보이는데, 이러한 부대의 최종 목표는 춘천읍을 습격하는 것이었다.(대한매일신보, ‘의병소식’, 1908년 9월 20일) 춘천 정미의병은 1907년 7월 일어나 약 1년간 일본군과 전투를 벌였다. 이 춘천 의병활동의 특징은 오영섭 연세대 연구교수가 발표한 논문 ‘춘천지역의 정미의병운동’(의암학연구 제19집)에서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첫째, 1907년 7월 고종퇴위ㆍ군대해산에 반발하여 일어났다. 이는 단발령 이후 춘천에서 봉기한 을미의병의 전통을 계승한 것으로, 다른 지역 의병에 비해 늦게 일어났지만 짧고 굵게 활동하였다. 둘째, 다른 지역 의병들처럼 서울의 근왕세력과 춘천의 재야세력 들의 연합으로 일어났다. 셋째, 신분의 벽을 극복한 의병이었다. 유홍석ㆍ최천유ㆍ박선명ㆍ지용기ㆍ인찬옥ㆍ김정삼 등이다. 이중 유와 인을 빼면, 모두 양반이 아니었다. 이들은 평민층의 의병참여를 촉진하여 의병운동의 활성화에 기여했다. 넷째, 춘천의병은 다양한 활동을 벌였다. 일본의 군대와 경찰과 전투를 벌였다. 또 이들은 친일파와 일본인들을 죽이고, 시설을 파괴하고, 관청을 습격하였다. 이는 일본의 한국통치를 저지하려는 것이었다. 그 때문에 일본은 춘천의병을 강하게 진압하였다. 다섯째, 춘천의병은 강원관찰부 점령을 최종목표로 삼았다. 춘천의병은 1907년 9월 한 달간 춘천을 사방에서 포위하였다. 이 시기 상황은 1907년 9월 24일 의병선유사에게 순종이 ”지방이 불온한 가운데 강원도가 가장 심하다 하니 속히 출발하여 가가호호 설유하여 일반 적자(赤子)들로 하여금 생업을 안돈하도록 하라.”는 칙교를 내릴 정도였다. 이상에서 살폈듯이 정미의병전에서 춘천의병은 뚜렸한 목표를 갖고 강력하게 항전한 사실을 알 수 있다. 이런 만큼 일제의 거센 무력동원이 있게 되었다. 바로 이 춘천 정미의병전이 일제의 강한 통제 하에 있었음을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사료가 발굴되었다. (사)아리랑연합회가 ‘의병아리랑’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1908년 2월 춘천 부내면에서 산출된 ‘수비대 잔유 청원서’이다. 이때 수비대는 1907년 9월에 강원관찰부에 파병되어 5개월 만에 철수 하게 된 상황에서 일어난 일이다. 이 기간은 유생 신분으로 농사를 업으로 삼던 인찬옥이 1907년 7월 서울에서 내려온 고종세력의 수하 김제현의 창의활동에 고무되어 창의의 깃발을 들었다. 그는 사내면에서 창의하여 소모활동을 펼치다가 7월 말경 춘천 경무 지부에 포착되어 황기운(黃奇雲)·한병이(韓炳伊)와 함께 춘천군 경무서에 수감되었다. 인찬옥의 수감 이후 보름 정도 지난 8월 중순경부터 춘천 각지에서 의병운동이 본격화 되었다.(대한매일신보, 의병소식, 1908년 8월 1일) 이 때 부내면 면장은 물론 11개 리 이장들이 수비대장에게 철수하지 말고 더 머물러 달라는 청원을 한 것이다. 이 자료가 춘천지역에서 발굴된 것으로 보아 실제 수비대에 전달, 접수되었는지 여부는 단정할 수가 없으나, 의병에 반하는 활동임으로 ‘반의병’자료인 것이다. ‘반의병’에 대한 정의는 없지만 대략 이런 정도로 볼 수 있다. 즉, 선유조칙 낭독, 의병 해산과 귀순 권유, 고시문 게시, 자위단 창설 지원, 의병 동태 파악 보고, 기득권 유지를 위한 상하 갈등 조장, 등을 말 한다. 이 중 면장과 이장 연명의 수비대 잔유 청원 행위는 이들 행위보다는 더 적극적인 반의병 활동이다. 춘천군의 부내면은 강원관찰부가 소재한 곳으로 이후 춘천면→ 춘천읍→ 춘천부→춘천시로 변천한 중심부이다. 당시 서명과 수결한 11개 리(里)는 허문리 사창리 대판리 가연리 위동리 낙사원 보안리 후평리 수동리 전평리 죽전리이다. 이들 이장 11명 외 10명이 연명하여 청원하였다. 청원서 번역문은 다음과 같다. "수비대(守備隊)의 중대장(中隊長) 공과 소대장(小隊長)공과 특무정교(特務正校)공 세 분께 청원합니다. 이곳에 부임한 이후로 폭도가 그치고 백성들이 편안히 쉬오며, 기율(紀律)을 더욱 엄히 하여 털끝만큼도 침범함이 없었습니다. 통역하는 권응두씨도 총명하고 슬기로운 재주와 재능이 뛰어나 역관의 소임을 이리저리 고심하여 안심시키기를 옛날과 같이 하였습니다. 이에 도내(道內) 생민들이 의지하기를 장성(長城)같이 하였는데, 이번에 거두어 돌아간다는 경우(境遇)에 이르렀사오니, 슬프고 허전함을 이길 수 없습니다. 이에 감히 일제히 호소하오니 민정을 굽어 살피셔서 계속하여 머물러서 촌마을이 평온하고 폭도가 없어지게 하심을 엎드려 바랍니다. 1908년 2월 9일 수비대대장 각하” 약 7개월 동안 주재한 수비대에게 "폭도가 그치고 백성들이 편안히 쉬오며, 기율(紀律)을 더욱 엄히 하여 털끝만큼도 침범함이” 없었으니 철수를 하지 말고 "도내(道內) 생민들이 의지하기를 장성(長城)” 같으니 계속 지켜 달라는 청원이다. 물론 이런 투는 유가적(儒家的)인 겸사(謙辭)일 뿐이라고 쳐도 "일제히 호소하오니 민정을 굽어 살피셔서 계속하여 머물러 ” 달라는 것은 귀와 눈을 감고하는 반의병 활동의 극치이다. 이는 그만큼 수비대가 철저하고 완벽하게 장악한 반증인 것이 아닐 수 없다. 이 청원의 결과는 확인되지 않는다. 다만 춘천의병 연구 논문 등에 부내면 상황은 "의병의 습격을 당하지 않았다”고 하였다며 서·남·북 세 방면에서 강원도관찰부를 포위하는 형세를 이루기는 했지만 끝내 점령하지는 못하였다. 1907년 8월 강원도관찰부에는 수비대 1개 소대, 경찰관리 17명이 배치되어 있어서 무력이 약한 의병이 직접 공격하여 관찰부를 점령하는 것은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한편 자료에 의하면 수비대의 일본인은 ‘춘천수비대의 켄다(謙田 또는 가마다) 대위’, ‘시마다(島田) 경시’, ‘수비대 이와모토(岩本) 소위’, ‘후지이(藤井) 소위’, ‘가와이(河合) 소위’가 보이나 청원서의 구체적인 중대장, 소대장, 특무정교의 이름은 확인되지 않는다. 다만 "춘천수비대”의 켄다(謙田) 대위와 "보좌관 시마다(島田) 경시는 춘천수비대장과 협력하여 부하를 지휘해 순사 24명과 경무관 총순, 순검 등 15명을 주야로 근무하게 하고~”(위의 논문)라는 기록으로 또 가장 많은 출현 빈도를 보이는 가와이(河合) 소위가 세 직위 중의 인물들로 추측된다. 이 자료를 공개한 (사)아리랑연합회는 "이런 자료를 통해 일제의 병탄이 얼마나 철저하게 진행되었는지를 구체적으로 알 수 있게 한다는 차원에서 연구 자료로 제공하려 한다.”고 밝혔다. (사)아리랑연합회는 춘천의병아리랑, 문경의병아리랑, 구미의병아리랑 등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관련 사료를 수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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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사 ‘신통일아리랑 평화축제’, 아리랑 얼쑤!천주평화연합 주최, 신통일아리랑 평화축제가 19일 오전 경북 풍기에 위치한 금강사에서 개최했다. 대한불교도법황종 금강사와 (사)한국종교협의회 등이 함께 아리랑 한마당을 통해 평화통일을 염원했다. 이번 행사에는 이현영 UPF 한국회장, 대한불교조계종 팔공총림 방장 임담의현 대종사, 대한불교도법황종 종정 혜경 대종사, 대한불교도법황종 총무원장 도봉스님, 전법주사 노형 대종사, 대한노인회 김동진 상임이사, 세계불교도연합 총재 도룡국사, 박성만 경상북도의회 의원, 김주영 영주시의회 의원을 비롯하여 UPF의 평화대사, 평화운동가 약 300여명이 참석했다. 또한 사할린동포연합회 권경석 회장도 참석했다. 행사를 주관한 UPF는 UN경제사회이사회 ‘포괄적 협의 지위’를 가진 글로벌 NGO로써 국내에서는 17개 광역시도 및 232개 시군구에 지부를 두고 활동하고 있다. ‘신통일아리랑’에서 펼쳐진 아리랑은 6월 1일 ‘의병의 날’과 7월 27일 정전 70주년을 의미화 한 의병아리랑을 중심에 배치하고 7개 지역 아리랑보존회가 전승하는 토속아리랑을 함께했다. 경상도 지역 '대구아리랑'에서부터 사할린에서 불렸던 '사할린아리랑'까지 7지역 단체에서 12종의 아리랑을 선보였다. 첫 무대는 경산아리랑보존회가 준비한 산뜻한 ‘화전놀이아리랑’으로 열고, 휘날레는 탁월한 보편성을 지닌 '본조아리랑' 대합창으로 여몄다. 2006년 창립한 경산아리랑보존회(이사장:배경숙)은 경산아리랑을 전승하고 매년 경산아리랑체와 경산아리랑전국경연대회를 개최하고 있다. 영남지역 구전민요와 함께 경산아리랑을 스토링텔링 작업으로 완성한 소극은 전통에 무게를 실은 무대화를 통해 현대적 계승에 힘쓰고 있다. 2003년 창립한 영남민요아리랑보존회(이사장:곽동현)는 2003년부터 매년 8월 15일 광복절에는 대구아리랑제(통상20회)를 개최해오고 있다. 영남 지역에 25개 지부와 함께 영남아리랑축제 및 대구아리랑전국경창대회(통상 20회)를 개최하고 있다. 2012년 창립한 (사)춘천의병아리랑보존회(이사장:기연옥)은 기우만 의병장 직손으로서 문헌과 구전으로 전해지는 춘천의병아리랑과 최초 여성의병장 윤희순을 기리는 '윤희순의병아리랑' 등을 소극과 뮤직컬로 무대화 하여 국내외 순회공연을 통해 널리 알리고 있다. 2019년 서울아리랑패스티발 전국아리랑경연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2011년 창립한 (사)영천아리랑연구보존회(이사장:전은석)는 영천아리랑을 전승하고 매년 영천아리랑제와 영천아리랑전국경창대회(통산10회)를 개최하고 있다. 일년에 100여 차례 경로당 위문공연을 해오고 있다. 2005년 배경숙의 '구미아리랑' 발표 후 창립한 구미의병아리랑보존회(이사장:임규익)은 2009년부터 경상북도과 구미시 후원으로 매년 구미아리랑제 개최, 2018년 이후 허위 의병장을 기리는 구미미의병아리랑제를 개최해오고 있다. 2016년 창립한 (사)왕십리아리랑보존회(이사장: 이혜솔)는 경기서울 지역 아리랑을 전승하고 있다. 아리랑, 왕십리아리랑, 사할린아리랑, 아무르아리랑, 아리랑코로나, 연꽃아리랑 등을 스토링텔링 작업을 통한 무대화에 힘쓰고 있다. 사할린아리랑보존회 지도교사로 봉사하고 있다. 2020년 창립한 동두천아리랑보존회(회장:유은서)는 휘날레에서 본조아리랑을 선창했다. 6월 25일 동두천아리랑제를 열 예정이다. (사)아리랑연합회는 이번 금강사에서 펼친 아리랑 한마당을 시작으로 신통일한국을 추동하는 힘의 노래가 아리랑임을 다양한 곳에서 전개하기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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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평화와 통일로 나아가는 신통일아리랑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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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에 '인류무형문화유산아리랑비' 선다‘기념비적 기념비’, 유네스코 아리랑 등재 10주년을 기념하는 '인류무형문화유산아리랑비'가 강원도 정선 아우라지 강가에 세워진다. 아리랑의 고향 정선과 맏형 정선아리랑의 포용력과 국내외 40개 지역 아리랑 전승단체의 대동정신이 대통합을 이뤄 세우는 뜻깊은 비이다. 전면 글씨는 한글 서예가 한얼 이종선 선생이 쓰고 후면 취지문은 ‘정선체’로 새기고, 기단에는 40개 지역 단체와 대표자 명이 새겨진다. 비의 규모는 높이가 5m 40cm로 국내에서 가장 큰 비이다. 세워지는 곳은 여량면 여량리 아우라지 강가이다. ‘아우라지’는 송천과 골지천이 합수되어 아우라진다(어우러진다)는 의미라서 정선군과 전승단체가 어우러지는 대통합과 일치한다는 점에서 최적지이다. 비 전면에는 "유네스코 등재 10주년 기념 인류무형문화유산아리랑”이 새겨진다. 후면의 취지문에서는 아리랑이 '민족의 노래'라는 전제로 정선군과 사단법인 아리랑연합회가 공동 발의하고, 국내외 아리랑 전승단체가 아리랑의 창조적 계승에 뜻을 모았다고 밝혔다. 전문은 다음과 같다. "민족의 노래 아리랑은 세대와 세대를 이어 전하며 공동으로 창조한 결과물이다 각 지역마다의 정서를 담고 여러 문화 예술장르로 변화하며 다양하게 존재한다. 민족정체성 함양과 공동체 결성에 기여하며 근현대사에서 세계가 인정하는 한국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유네스코는 아리랑을 이천십이년 십이월 오일 인류무형유산 대표 목록에 등재하여, 아리랑의 인류 보편 가치를 인정하였다. 이에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 10주년을 맞이하여 정선군과 사단법인 아리랑연합회가 공동 발의하고 국내외 아리랑 전승단체가 창조적 계승에 뜻을 모아 기념비를 세운다.” 기단에는 대통합의 뜻을 모은 40개 지역 전승단체와 대표자 이름이 새겨진다. "등재 10주년 기념비 건립추진위원회 위원장 정선군수 아리랑연합회 이사장 김연갑. 건립 동참 국내외 아리랑 전승단체” 아래 다음의 보존회와 대표자 이름이 새겨진다. (가나다순) "경기아리랑보존회 이춘희, 경산아리랑보존회 배경숙, 계룡산아리랑보존회 범진, 공주아리랑보존회 남은혜, 구미의병아리랑보존회 임규익, 구미아리랑보존회 김종남, 인동아리랑보존회 서주달, 군포아리랑보존회 한영숙, 동경아리랑보존회 전월선, 동두천아리랑보존회 유은서, 대구아리랑보존회 김상준, 문경아리랑보존회 송옥자, LA아리랑보존회 서연운, 부산아리랑보존회 김희은, 사할린아리랑보존회 최미분, 사할린아리랑앙상블 박영자, 서귀포아리랑보존회 유재희, 서도아리랑보존회 유지숙, 서울아리랑보존회 유명옥, 상주아리랑보존회 김동숙, 성주아리랑보존회 임옥자, 성주의병아리랑보존회 최문희, 아리랑연합회 기미양, 아리랑보존회 김영임, 안성아리랑보존회 조명숙, 연변아리랑보존회 전화자, 영남아리랑보존회 정은하, 영천아리랑보존회 전은석, 예천아리랑보존회 최수인, 왕십리아리랑보존회 이혜솔, 울릉도아리랑보존회 황효숙, 인제뗏목아리랑보존회 권원희, 정선아리랑보존회 김길자, 제주아리랑연구회 장경숙, 진도아리랑연구보존회 강송대, 진천아리랑보존회 박소정, 청주아리랑보존회 강옥선, 춘천의병아리랑보존회 기연옥, 하바롭스크아리랑보존회 김석복, 호주아리랑보존회 김채원." 한편 이 비문의 글씨는 한얼 이종선님으로 최근 대형 작품 전시회를 개최하여 화제를 모은 분이다. 약력은 다음과 같다. 한얼 이종선 한국서학회 이사장, 동방대학원대학교 서예과 교수, 성신여대 미술대학 초빙교수, 한국서총 총간사,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 강사, 중국난정서회 서울연구원장. 유농서회, 오거서루 등 주재. 대한민국서예대상전 등 50여 대회 심사위원. ‘한글 서예로 읽는 우리음악사설전시회’(21) 외 개인전 6회. 한글서예 오늘과 내일 전, 광개토대왕비 특별전 외 초대전 400여회 출품. 불교방송개국 기념비(97), 남산도서관 표지석(02), 고려대학교 개교백주년기념비(06), 지리산 연곡사 사적비(21) 외 30여 곳 제액 및 금석문. 예술의전당 서울서예박물관, 국립현대미술관 외 국내외 40여 기관 작품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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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민요연구회, 25일 '그리운 이재욱 팔공산 노래여' 선보인다대구에서 대구 근대인물 이재욱의 업적을 기리는 ‘그리운 이재욱 팔공산 노래여! ’행사가 25일 개최된다. 영남민요연구회(회장 배경숙)은 2005년부터 매년 개최되는 '아리랑 그리고 영남의 소리' 의 18번째 행사이다. 25일(일) 오후 4시 ‘2.28 기념공원’에서 개최한다. 전체 5장으로 구성된 ‘그리운 이재욱, 팔공산 노래여’ 는 이재욱의 일대기를 5막으로 보여준다. 유년기 시절 어린 시절을 대구에서 함께 보낸 시인 이상화와 문학적 관계를 보여주고, 청년기는 일제강점기 경성제국대학에서의 영남민요를 전공하고 중앙도서관 근무하는 시절을, 그리고 인생의 전환점, 장년기는 해방 직전 대구로 귀향하여 도청에서 근무하는 시기의 활동상을 조명한다. 마지막 대목은 짧은 생애 동안에 그가 남긴 영남민요 자료조사의 소중함을 함께하는 무대로 전래민요를 오늘날의 버전으로 현대화한 작품으로 마무리를 한다. 이재욱이 남긴 1930년 기록 속의 영남의 토속민요를 남성 노동요, 여성 연정요로 부각시켜 '생활 속의 민요'로 향유하는 모습을 재현한다. ‘지게목발소리’를 정종철 외 회원들이, ‘화전노래’를 정종화 외 회원들이 함께 한다. 특히 세 가지 아리랑도 무대에 올려지는데, ‘구미의병아리랑’을 임규익 외 회원들이, ‘팔공산아리랑’을 전체 합창으로, ‘경산아리랑’을 배경숙 외 회원들이 꾸민다. 이외 10여 종의 영남 지역 전래민요가 다양한 전통 절구같은 농기구, 삼베 잣는 물레같은 소도구와 함께 30여 명의 회원들에 의해 펼쳐진다. 행사를 주관하는 영남민요연구회는 17회의 공연을 통해 영남지역 전래민요를 현대적인 무대화 작품으로 선보이며 나름 성과를 이룩했고, 회장 배경숙은 이재욱의 영남전래민요를 연구하여 박사학위를 취득한 연구자요 공연 기획자이다. 이번 행사에 대해 배 회장은 "이재욱은 어린시절 대구의 대표적인 시인 이상화와 삼촌간이라는 것에서 문학적 재능을 갖고, 영남민요를 연구하였다는 사실을 조명하고자 합니다. 그래서 이재욱의 학문과 민요 연구 성과를 더 알리는데 목적을 두었습니다.”라고 하였다. 영남민요연구회는 2016년 이재욱(1905~1950)을 대구근대문화인물로 선정하는데 기여하고, 그의 주요 업적인 ‘영남전래민요집’을 발굴, 연구를 주도하였다. 이번 공연은 이재욱의 생애와 업적을 타 지역에 알리는 목적으로 그가 조사 기록한 영남지역 아리랑과 민요를 재현하고 보존하기 위한 무대화 작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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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의병정신 기리는 소리극 '구국 의병장 허위'2022년 경상북도 선정 공연지원사업 소리극 '구국 의병장 허위'가 14일 구미강동문화복지회관 천생아트홀과 24일 대구 어울아트센터 함지홀에서 전석 무료공연으로 막이 오른다. 구미시가 주최하고 구미의병아리랑보존회가 구미시에서 매년 주관하는 제14회 '구미의병아리랑제'의 일환으로 '왕산 허위'의 의병정신을 널리 알리고자 하는 창작 소리극이다. 행사의 취지와 목적은 구한말 대표적인 의병장이자, 서대문형무소 제1호 사형수 왕산 허위선생의 구국헌신을 통해 이룩한 숭고한 의병정신을 계승하고, 허위선생과 함께 이름없이 스러져간 의병들의 의병활동을 전국에 알리려는 사업으로 시작되었다. 또한 왕산 허위의 의병활동과 함께 구미에 설립된 '왕산허위기념관'과 대구지역 달성공원 내 소재한 ‘왕산허위선생 순국기념비’를 재조명하고자 기획되었다. ‘왕산 허위’ 의병장의 존재와 허훈·허겸·허위 3형제가 구국운동에 나서는 의로운 봉기를 기리기 위해, 소리극 '구국 의병장 허위'가 창작 아리랑 '구미의병아리랑'을 통해 부각된다. 국권 회복에 투신한 일가족의 희생과 활약상이 제시된다. 줄거리는 허위선생의 업적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주인공 허위는 형제 중 포부와 경륜이 남달랐다. 허위는 김산에서 거의하여 뜨거운 의기를 불태웠다. 그러나 1896년 4월 7일 충청북도 진천에서 ‘의병을 급속히 해산하라’는 국왕의 봉서를 받는다. 이에 허위는 "호남 3월에 오얏꽃 날리는데/ 보국하려던 서생이 철갑을 벗는다/ 산새는 시국 급할 줄은 모르고/ 밤새도록 나를 불러 불여귀(不如歸)라 하네.”라고 통분한다. 이러한 허위의 의병정신의 혼을 아리랑 선율에 담았다. 구미의병아리랑(작사 작창:배경숙) 아리랑 아리랑 아리리야/아리랑 어얼싸 아라리요(후렴) 여봐라 우리네 대장군 나셨다/13도 창의대진 군사장이시다 노래하라 외쳐라 우리네 의병장/기린다 우리는 왕산허위 대장군 나시니 구미땅 임은동이요/서시니 경술년 30조호령이다 오얏꽃 날리는 3월이 오면/밤새도록 노래하라 그립다 하여라 1904년 한일의정서가 강제로 조인되고, 일제의 침략 야욕이 드러나자 전국에 ‘배일통문’을 돌려 일제의 침략상을 규탄하고 전국민의 분발을 촉구하였다. 또 친일매국단체인 일진회가 조직되자 이에 반대하는 운동을 강력하게 전개하였며 이듬해 3월 일제의 압력으로 4개월 동안 헌병사령부에 구금되었다 강제로 귀항 조치를 당했다. 1907년 9월 경기도 연천, 적성, 철원 등지를 무대로 의병을 일으켜 일제의 군대와 전투를 벌이고 친일매국분자를 소탕하는 의병 활동을 전개하였다. 전국 각지의 의병 1만여 명이 모여 '13도 연합의병창의군'(13道聯合義兵倡義軍)을 결성하였다. 1908년 12월 전국 의병장들의 통합 의병 부대인 13도창의대진소(十三道倡義大陣所) 군사장(軍師將)을 맡았다. 1908년 5월 통감부에 30여 개의 요구 조건을 제시하고 투쟁하던 중 6월 11일 경기도 포천에서 체포되어 9월 18일 사형선고를 받고, 10월 21일 교수형을 당해 순국하였다. 그의 나이 54세였다. 외세에 대항한 구국항쟁을 펼친 위대한 삶이었다. 임규익 회장은 "이번, 구미 지역 정신문화를 계승하는 소리극 '구국 의병장 허위'는 구미와 대구 지역을 순회하는 2회 공연으로 마련하였다. 왕산 선생의 숭고한 애족정신과 가족과 후손들의 만주 항일투쟁의 이야기 일부를 창작 민요극에 담아내려고 한다." 이어 "예와 충절의 상징인 금오산의 인문정신은 인류무형문화유산 '구미아리랑'에 담았고 창의군의 외침과 왕산의 호령을 창의가 '왕산의병아리랑'에 담았다"라고 전했다. 영남민요의 실기와 이론을 전공한 배경숙 예술감독은 "8월 15일 광복절을 맞이하여, 의병정신을 기리고자 구미의 허위 의병장의 의병활동을 재조명하고자 마련한 소리극이다.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당시 의병은 왜구의 총칼에 죽으면서 "우리는 외적으로부터도 적이고, 조국으로부터도 적이었다고" 울부짖으며 스러져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민족은 어느 시대에서든 외세에 대항하여 가족과 나라를 지키려는 의병은 전국에서 불같이 일어나 봉기했다. 말 그대로 ‘의로운 군인’(義兵), 의병의 존재를 알리는 것이다. 특히 구미 선산 칠곡지역에는 이름없이 죽어간 의병들이 많다. 이러한 숭고한 의병정신을 의병아리랑의 사설에 담아서 스토리텔링 작업으로 완성한 소리극을 통해 의병정신을 시민들과 청소년들에게 각인시키고자 한다."라고 밝혔다. 영남지역에서 전래되어 오고 있는 방아타령,맷돌질소리,물레소리,나물노래 등의 영남민요가 여느 지역 민요하고는 다르다. 영남조로 내지르는 투박미와 억양의 야생성이 이채롭다. 특히 당시 민중의 한과 생활상을 전통소품인 지게와 목발, 절구, 물레, 맷돌, 꽃상여 등을 통해 재현하는 무대는 관객들에게는 특별한 체험이 될 것이다. 총괄기획에는 김강수. 작·연출에는 김필범이 맡았다. 특별 프로그램으로 14일과 24일 구미 왕산허위기념관 탐방과 소리극 '구국 의병장 허위' 공연 관람을 위한 단체 신청이 20명까지 모집을 한다. 문의처는 070-4447-4362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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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경산자인단오제와 함께 경산아리랑제 '아리랑데부'4일 경산자인단오제 본 무대에서 제8회 경산아리랑제 '아리랑데부(아리랑+랑데부)'가 개최되었다. 경산자인단오제 둘째날은 무형문화재 초청 공연이 펼쳐졌다. 국가무형문화재 '봉산탈춤'에 이어 오후 7시에는 인류무형문화유산, 국가무형문화재 129호 '경산아리랑'을 널리 알리고자 하는 제8회 경산아리랑제가 경산아리랑보존회 주관 주최로 개최되었다. 금년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아리랑 등재 10년이 되는 해이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2년 동안 비대면 공연을 해오면서 무대공간은 유튜브에 실시간 방송이 되면서 메타버스 시대를 넘나들게 된다. 이러한 현실문제를 따라가고자 공연의 장르가 작년과 다르게 'K-POP' 트랜드에 맞추고자 노력했다. 경산아리랑보존회 배경숙 회장은 2007년 경산아리랑 발표회를 하고 15여 년간 경산아리랑을 알려왔다. 한편 2003년 영남민요연구회를 창립하고, 대구, 구미. 경산에서 경산아리랑과 영남민요를 알리기 위해 힘써 왔다. 배경숙 회장은 "올해는 아리랑이 유네스코 등재 10년이 되는 해이다. 아리랑은 예로부터 살면서 괴롭고 슬픈 일 있으면 ‘아리랑’한 가락으로 풀어내고, 즐겁고 흥겨워도 ‘아리랑’으로 흥을 돋우었다. 태백산 자락 경상도 사람들의 가슴에 자리했던 수많은 아리랑 소리는 경상도 부녀자들의 눈물과 한숨, 웃음과 기쁨을 만나게 해준 소중한 소리들이다." 며 "영남인의 심성이 담긴 '영남민요'도 이제는 점차 사라져 아득히 기억 속으로 더듬듯 그 소리 한 자락 헤아리는 실정이 되었다. 그래서 '조선-POP'으로 편곡하여 어린이들과 함께 노래하며춤추는 '놀이'와 함께 무대에 올렸다. 인류무형문화유산 아리랑은 다음 세대에 물려주어야 하는 자랑스런 문화유산이다. 경산아리랑을 경산시민들 마음속에 살아 지역 공동체 결속에 기여하는 노래가 되기를 바라는 8번째 메아리를 외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경산 지역 민요조사를 하고 '경산아리랑' 사설 12수를 직접 작사 작창했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가났네/ 아리랑 고개로 넘어가네 (후렴) 원효 설총 일연선사 삼성현 나신 곳/ 호국정신 꽃피우리 길이길이 만만세라 오월단오 계정숲에 흰구름 나르고/ 한장군의 넋이런가 노랑나비 춤을 추네 성암산 허리에 내린 밤안개/ 아리랑 장단에 달빛도 정다워라 남천강 푸른 물결 말없이 흘러가고/나그네 잠긴 설움 옛 추억도 떠가네 남매지 전설 오누이 눈물인가/ 남성현 높은 고개 보슬비가 흩날리네 이번 무대 하일라이트는 '조선-POP'으로 연출한 '경산아리랑+영남민요' 메들리이었다. 남녀노소가 출연한 이 작품은 마을사람들이 낮에는 농사를 짓고, 밤에는 아낙네들이 물레도 돌리면서 시집살이의 절절한 아픔을 민요를 부르면서 고난을 치유하는 삶을 노래했다. "가요 가요 나는 가요/우리 어매 보고지고"라고 시작하는 '밭매는 소리'를 시작으로 민중의 희노애락과 생로병사를 담아낸 스토리텔링에서 영남인의 심성을 녹여냈다. 선율은 동시대인이 공감하는 '조선-POP'으로 편곡하여 역동적인 신명성을 연출하였다. 경산지역에서 불리는 '상여소리'와 꽃상여까지 메고 나와서 눈물짓게 하고, 울긋불긋 색동옷을 입은 어린이들의 생동감 있는 율동과 청아한 목소리는 관객의 눈과 마음을 단숨에 훔쳐버렸다. 가장 많은 박수를 받았다. 특히 휘날레에서 세마치 장단으로 부른 '경산아리랑'에 이어 셔플댄스 율동과 함께 부른 셔플 리듬으로 편곡한 '경산아리랑'은 남녀노소가 하나가 되어 무한한 내일의 희망을 노래하고자 하는 '미래의 노래'로 형상화 하였다. 신명이 난 관객들도 함께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고개를 넘어간다" 후렴을 따라 불러주었다. 경산아리랑제 무대는 '경산아리랑'을 대주제로 하고 영남민요를 함께 전통(놀이, 노동)을 재현하는 무대이다. 실잣는 물레와 여러 농기구, 떡 찧는 절구, 대나무 바구니와 푸성귀, 꽃상여까지 등장하여 토속 민요의 신명성를 더해 주었다. 관객과 무대가 하나가 되는 순간이다. 휘날레 끝났지만 앵콜을 2번이나 받았다. 배경숙 예술감독은 영남민요를 지키고 있는 정은하 명창에게 영남민요와 영남 지역 아리랑을 사사했다. '영남민요'를 주제로 영남대학교 한국음악학과에서 석사를 받고, '영남전래민요 연구'로 국문학 박사를 받은 민요 연구 전공자이며 실기인이다. 또한 일찌기 20대부터 전수를 받은 한국전통무용 춤사위를 근간으로 작품 구상을 하고. 연희자들에게 안무까지 가르쳐서 무대에 세우고 있다. 이론과 실기를 기반으로 시대의 트랜드에 따라서 연출까지 해내고 있다. 내년 경산아리랑제가 더욱 기대가 된다. 배예술감독은 "영남민요의 토속적 소리를 현장에 나가서 채록하여 편곡하여, 대중화 하기 위해 현대화하여, 'K-POP'과 같이 '조선-POP'으로 명명하고, 전통을 재현하기 위해 스토리텔링을 통해 대중에게 다가갈 수 있게 하였다. 다음 해에는 '경산아리랑'을 '조선-POP'으로 연출하려고 한다. 경산시민들이 경산아리랑을 애창곡으로 불러주기를 바란다."라고 밝혔다. 경산아리랑보존회는 2020년부터 해외 동포들과 함께 하는 사할린아리랑제 무대에 참가해 달라는 초청을 받았다. 전통을 재현한 꽃상여까지 들고 가기 위해 조립식으로 만들었다고 보여주었다. 전 회원들이 매주 함께 모여서 10월 1일에 개최되는 2022년 서울아리랑페스티발 전국아리랑경연대회 출전 준비를 하고 있다. 경산아리랑은 2007년 첫 발표(영남대학교 인문관)한 아리랑으로 열다섯 살을 맞았다. 그동안 축제 등을 통해 경산시민들에게 아리랑의 멋과 맛을 전하기 위해 노력을 해 왔다. 올해 경산아리랑전국경창대회도 6회를 맞이했다. 영남민요연구회는 경산아리랑, 구미아리랑, 구미의병아리랑, 팔공산아리랑을 비롯한 영남 지역 아리랑의 전승에 힘쓰고 있는 공동체로써, 아리랑의 가치와 전승 방식을 이해하고 있는 아리랑전승단체이다. 경산아리랑의 형성과 전승활동은 더욱 주목할만하다. 이 과정에서 문경시가 발행한 전국아리랑 사설 기록화 결과인 1만수 '아리랑 대장경'에 수록되어 전국과 나아가 세계인들에게 확산될 계기를 맞이했다고 본다. 5년 전 발매한 경산아리랑이 담긴 '배경숙의 아리랑' 음반도 국외동포 음악인들에게 전해주고 있다. 국적이 다른 여러 버젼의 경산아리랑도 기대해 본다. 아리랑은 역사적으로 여러 세대를 거치면서 민중들이 공동 노력으로 창조한 결과물로 한국인의 정체성을 형성하고 결속을 다지는데 기여해 오고 있다. 경산아리랑도 이에 제 값을 해야 할 것이다.(세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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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랑공연예술연합회 제2차 월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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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랑공연예술연합회 발기식 및 총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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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뉴스] 소리극 팔공산인 이재욱, 영남민요 향기로 피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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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극] 팔공산인 이재욱, 영남민요 향기로 피오르다영남민요연구회가 2005년부터 대구에서 매년 주최하는 ‘아리랑, 영남의 소리’의 무대가 꿈꾸는 시어터에서 7월 2일 금요일 오후 7시 30분에 펼쳐진다. 28일 대구에서 총예술감독을 맡은 배경숙 회장을 만나서 올해 열일곱 번째로 올려지는 아리랑 행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번 작품 ‘팔공산인 이재욱 영남민요 향기로 피오르다’는 일제강점기 영남전래민요를 연구한 팔공산인 이재욱의 업적을 재조명하기 위해서 소극으로 이루어진 무대이다. 작품은 기승전결로 구성된 전 4장으로 이루어졌다. 제1장에서는 청년 이재욱 선생이 일본인 민요전공자 교수와 나누는 민요에 관한 대화를 통해 그 땅에 사는 백성의 심상이 담긴 민요 연구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제2장에서는 우리 민족의 혼이 담긴 민요의 가치와 기록의 중요성을 자각하는 장면이 강하게 각인된다. 제3장에서는 팔공산 자락에 살고있는 마을에서 모심기를 하는 장면에서 이재욱 선생이 민요조사를 완결하겠다는 굳은 의지를 보여준다. 제4장에서는 어두운 일제강점기에서 해방공간을 맞게 되어 이재욱 선생은 국립도서관 초대 관장직을 맡게 되지만 625전쟁과 함께 납북되는 과정에서 피살된다. 이를 안타깝게 여기며 팔공산아리랑으로 대단원을 맺는다. 연출은 예방대씨가 맡고 배우 이영찬이 주인공 이재욱 선생으로 분한다. 총예술감독을 맡은 배경숙 회장은 "이 작품은 일제에 빼앗긴 나라에서 사라져가는 우리 민요를 후세에 남기겠다는 이재욱 선생의 굳은 의지를 소극으로 만들어서 전달하고자 한다. 우리나라 원로 민요학자는 영남지역에 집중되어 있다. 그러나 영남지역 민요만을 조사한 연구자는 이재욱 선생뿐이다. 영남민요 실기와 이론을 전공한 저에게는 그만큼 중요한 존재이다”라며 강조했다. "그 분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팔공산아리랑을 지어서 매년 부르고 있다. 이 소극 ‘팔공산인 이재욱의 아리랑’을 주제로 한 작품성은 매년 보완되어 올려지고 있다. 뮤직컬의 도시 대구에서 민요를 바탕으로 꾸며진 소리극이 부상하기는 어려운 여건이지만.....대구의 문화인물 이재욱과 인류무형문화유산 아리랑을 공유하고 널리 알리기 위해 전 회원들과 노력하고 있다. 올해에도 많은 대구 시민들과 함께 하고 싶다.” 2013년 시인 이창식의 <이재욱아리랑>이란 시가 그 하나다. 이 중 일부를 옮겨본다. "길 위의 영남아리랑 그를 따라 속 깊은 노래가 숨쉬다. 그가 듣고 적고 남긴 길 위의 노래화석 다시 살아나서 대구 길 위에 서다. 누구나의 길 위 꽉찬 연주의 힘을 통해 이재욱과 아리랑이 하나가 되어 배경숙의 아리랑판에서 놀다.” 팔공산인(八空山人) 이재욱(李在郁)이 명예롭게 소환되었다.‘납북인사’에서 최초의 민요연구 전공자·초대 국립도서관 관장· 『독서와 문화』 등의 저술가·대구의 근대문화인으로의 부활이다. ‘납북(拉北)’또는 ‘월북(越北)’인사들은 ‘이**’같은 복자(覆字)나 아예 가명으로 표기하기도 했다. 금기(禁忌) 인물로 취급되었기 때문이다. 이 금기를 배경숙이 영남의 아리랑으로 소환하여 금기를 풀어버렸다. 이 대목은 이재욱이 채록한 아리랑의 존재가 의미 있는 것임을 부각시킨 것이다. 배경숙 회장은 정은하 선생에게 영남민요를 사사했다. 한때는 수년간 서울에서 대구로 선생을 모시고 경기민요도 배웠지만, 경기민요에 치우쳐서 소리없이 사라져가는 영남민요를 지키기 위해 현장답사를 수행하였다. 기록의 중요성에 깨달아서 채보작업과 악보작업에 매진하고 있다. 특히 무대로 올라간 영남민요의 작품성을 위해 편곡 작품으로 완성하여 세상에 꺼내놓고 있다는 점은 주목된다. 영남민요연구회는 매년 대구, 구미. 경산에서 지역 아리랑을 알리기 위해 구미의병아리랑제, 경산아리랑제를 개최하고 있다. 영남민요와 아리랑을 지켜가는 스승 정은하 선생의 길을 묵묵히 따라가고 있다. 배회장은 박사과정을 마치면서 실기는 물론 이론까지 정립하여 민요에 대한 남다른 애정으로 전통문화를 지켜온 소리꾼으로 학계에서 다음과 같은 평가를 받고 있다. "배경숙은 영남지역 민요 소리꾼이자 연구자, 영남지역 아리랑 작창자로서 아리랑축제와 같은 전통문화 주제행사 기획/연출가, 전래민요의 복원과 무대화로 창조적 계승을 선도하는 문화운동가이다.” 이런 평가는 2004년 영남대학교 음악대학원 국악과를 마치고. 이듬해 영남민요연구회 제1회 발표회 <아리랑, 그리고 영남의 소리>를 치루었다. 올해 제17회 발표회를 갖는 시기까지 17년간 전승활동의 결과를 말해준다. 그동안 주위 사람들과 스승 정은하 선생은 그가 가정사와 학업과 전승활동이 겹치는 힘든 시기를 어렵게 넘기는 것을 지켜보았다. 한편 구미의병아리랑보존회(회장:임규익) 회원들도 전래되는 '모심기 소리'를 재현했다. 코로나가 진정되면 매년 사할린에서 개최되고 있는 사할린아리랑제 무대에서 경산아리랑과 구미의병아리랑을 선보일 예정이다. 사회적 거리지키기 운동으로 전석무료 사전예약이 필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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